|작품세계|
김후란의 삶과 작품세계
편집부
김후란 시인(본명: 형덕)은 1934년 12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와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여성개발원 원장으로도 활동했다.
꿈 많던 여중생 문학소녀가 성장해 신문기자가 되고 시인이 되어 50년 동안 시를 써왔다.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시집 『장도粧 刀와 장미薔薇』, 『음계音階』, 『어떤 파도波濤』,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숲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시각에』, 『서울의 새벽』, 『우수憂愁의 바람』, 『세종대왕』(서서시집), 『시인의 가슴에 심은 나무는』, 『따뜻한 가족』, 『새벽, 창을 열다』, 『비밀의 숲』 등 12권. 시선집 『 오늘을 위한 노래』, 『노트북 연서』, 『존재의 빛』 등. 수필집 『너로 하여 우는 가슴이 있다』 등. 자전동화집 『덕이, 나무도 말을 하겠지?』가 있다.
1968년에 첫 시집 『장도와 장미』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그때까지 현대문학상을 받은 여성 문인은 박경리 소설가와 김후란 시인 둘뿐이었다. 그 외 월탄문학상, 한국 문학상, 펜문학상, 한국시협상, 만해시인상, 효령대상, 비추미여성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추천 시인 신석초에 의해 ‘점액성의 지성(知性)’으로 불리웠으며, 등단 후 미와 미소, 사랑과 평화, 생명과 구원 등의 미학을 구축해 온 시인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1년 10월 26 일 서울 남산에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문인들의 활동 뿐 아니라 문인들과 시민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 헌신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숲 국민운동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성을 소중히 한다는 마음인데, 문학도 역시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기 때문에 문학과 자연이 결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삶의 길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문학과 자연, 자연과 문학이 시민들과 함께 할 수있는 길을 닦아가고 있다.
신석초 선생과의 인연과 필명 김후란
김후란은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경향신 문에서 대학생 문예작품 모집을 했는데 거기에 시가 아니라 단편소설이 당선됐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려다가 다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진학해 다니다가 한국일보 기자가 됐다.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만난 분이 ‘바라춤’의 시인인 신석초 선생이었다. 신석초 선생은 김후란이 여기저기 청탁의 글을 쓰는 걸 보더니 “시를 쓸 생각이 있느냐?” 물으시고 “시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가져 와 보라” 해서 ‘오늘을 위한 노래’라는 시 딱 한 편을 골라서 갖다드렸더니 “아, 좋은데” 하면서 며칠 후 ‘金後蘭’(김후란. 나중에 后蘭으로 바꾸었음)이라고 이름을, 필명을 지어서 주었다.
본명 김형덕은 시인으로서 너무 이름이 무거우니 조선조 허난설헌 같은 시인, 그분의 뒤를 이어가는 시인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후란은 시인은 시를 열심히 쓰는 것이 기본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으며 단 한 편이라 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애송하게 만드는 그런 좋은 시를 가지고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나는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다’라는 말을 한다. 뭔가 목마른 게 있을 때 시를 읽고 쓰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시를 읽자, 시를 먹자, 시를 가슴에 꽃피우자”는 말이다.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 그것은 시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시적인 씨앗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려서 시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문학이 문학을 낳는다”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창작이 나오는 게 아니라 많은 독서량이 있을 때 그게 밑거름이 돼서 자기도 모르게 시적인, 소설적인 영감이 떠올랐을 때 작품을 쓰는 것이다. 독서량과 여행과 사람과의 관계 등등, 그 모든 것이 영양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