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사상과 감정의 개성적 표현이고 그 소재는 인생이다. 인간의 무질서하고 복잡한 심리를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정리하고 배열하여 질서를 만든다. 현실 세계 표상의 구체 적인 형상화를 통하여 문학이 구현하는 삶의 의미에 가치를 부여한다. 문학으로 재현된 세계는 사람의 본성과 행동이 서로 긴밀한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독자들에게 믿음과 쾌감을 선사한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계에 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숭고미를 추구한다. 이러한 본질에 천착하면서 작가의 체험적 상황이 조직화된 문학적 언어를 통해 새로운 실체로 창조됨으로써 사회 인식의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문학 장르로서 소설 이다. 작가의 삶을 문학으로 재현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이순 원을 꼽는데 반론을 제기할 평론가는 드물다.
이순원의 소설 세계는 더럽혀진 세상 가운데서 훼손되지 않는 것들을 찾아 그것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거나, 자기의식의 부재로 작가만의 고유한 인식이나 기억을 발견하기 힘든 한국소설사의 오랜 관행을 떨어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으로 요약될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라고 했다. 이순원의 작품에서는 끊임없이 존재 원형의 본질에 대한 천착 으로 삶의 존재 문제를 돋보이게 만든다. 문학이 해야 할 역할과 작가의 임무는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에 대한 직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설에 대한 사회적 기능의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이 그의 일관된 작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작가이고, 의식적인 노력과 착실한 훈련을 통해 그것을 체득한 작가로 그의 소설이 주는 신뢰감이 여기에서부터 나온다는 문단의 평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순원의 초기 작품들은 노동운동, 민주화투쟁, 광주항쟁, 그리고 남북분단 문제까지 현실 상황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분단에 의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통일의 문제를 다룬 「혜산가는 길」(1989), 유신정권 아래 저당 잡힌 청춘의 아픔을 그린 「우리들의 석기시대」 (1991)나 광주민주화운동 문제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에서 접근한 작품인 「얼 굴」(1993) 등에서도 이러한 주제 의식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작가 정신의 표상으로 볼수도 있다. 그가 ‘전방위작가’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사회의 여러 주제에 충실하면서 그것으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넓혀가는 과정에서 따라온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순원에게 가족이나 고향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고향은 강릉 시내에서 불과 6km 정도 떨어진 마을인데 아직까지 마을 촌장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농경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매년 정초마다 마을 사람들이 촌장에게 합동 세배를 올리고, 촌장이 마을의 구심점이 되는 유교 전통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체험은 그의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가문을 위해 헌신하는 종가의 이야기로 구체화되기도 하고, 전통적 공동 사회에 대한 향수로 나타나며, 소설 전반에 흐르는 윤리의식으로 내면화되 기도 한다. 이러한 독특한 성장 배경으로 그의 원체험은 자신의 소설 세계를 지배하는 기본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순원의 소설은 매듭이 없다. 꾸미지 않는 문체와 일상적 단어로 기술된 언어는 작품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제와 연계된다.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 공감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하는 작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일 수도 있고, 세상을 읽는 시각의 초점을 현실 상황과 그 변화되는 양상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는 일맥으로 작가 정신으로 표출되는 작품세계의 본질이다.
이순원은 오래 쓰는 작가다. 오래 글을 쓴다는 일은 먼 길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고, 독자들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뜻이다. 처음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갈수 있는 항상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의 소설 「백년을 함께한 친구 나무」(2014)에서 어린 신랑이 끼니를 굶어가면서도 먹지 않고 먼 미래를 위해 산에 밤을 심는 지혜로움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순원이 걸어온 작가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