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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길언 장편소설『숲의 왕국』. 이 땅의 해방 직후부터 계속된 이념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탐구하며 휴머니즘과 리얼리즘을 구현해온 소설가 현길언이 나무와 숲을 소재로 한 우화를 발표했다. 이 책은 숲의 생태적 완전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꿈을 우화적으로 서사화한 작품이다. 즉, 숲이 가진 이미지와 현상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차용하여 우리 시대 사람들의 행태와 정치상을 야유하고 비판하면서, 지향해야 할 대안과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수상작 내용
2013년 제2회 녹색문학상 수상작인 『숲의 왕국』 내용은 질서와 조화의 통일체를 보여주는 계시와도 같다.
『숲의 왕국』은 숲의 생태적 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꿈을 숲을 통해 서사화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나무나 숲은 공리논적인 차원에서 인식한다. 즉 사람을 위한 나무이고 숲으로 생각하여 숲을 조성하고 가꾸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숲이나 나무에 대한 관심을 인간 중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무보다 숲보다 더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나무나 숲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숲은 절대자가 창조한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것과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생태적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숲이나 나무를 효용의 대상이 아닌, 생명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무나 숲에 대한 바른 인식은 자연관의 변화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사랑과 평화라는 종교적 세계관에 닿아 있다. 자연에서 배우고, 인간도 자연화하는 것을 동경하는 동양적 자연관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숲의 왕국』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작품은 이원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숲을 의인화하여 ‘숲의 왕국’을 만들고 숲을 이루는 나무 들이 의인화되어 각각의 캐릭터로 참여하는 제 1서사가 있고, 그 ‘숲의 왕국’이 그 숲을 조성한 노인과 숲의 관리자, 정치가인 노인의 아들들의 관계에서 만들어가는 제2의 서사이다. 제 1서사는 내적 서사라면 제 2서사는 외적 서사이다.
주인공인 원 노인은 황무한 돌산을 푸른 숲으로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다. 어느 날 숲의 관리자로 부터 이상한 보고를 받았다.
“원 노인은 숲이 왕을 세우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목 상무로부터 들었을 때 황당하면서도 한편 흥미롭기도 했다. 60여년 전 생애를 바쳐 쓸모없는 돌산을 숲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제 자기네끼리 왕을 세워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보고대로 숲의 나무들은 숲의 자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숲은 조성한 숲의 주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숲의 왕국’을 건설하고 왕을 세운다. 서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왕이 될 만한 나무들은 왕이 되기를 꺼린다. 꺼리기보다는 왕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그래서 결국 탱자나무가 왕이 된다. 왕이 된 탱자나무는 그 날카로운 가시를 동원해 왕의 권위를 세우려고 숲의 나무들을 억압한다. 왕의 권위가 드셀수록 숲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새와 짐승들의 출입을 막고 벌과 나비들도 출입을 못하도록 한다. 사람들까지 드나들지 못하도록 함으로 숲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다. 유실수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못한다 그럴수록 왕의 횡포가 심해진다. 나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왕의 탄압 때문에 공포를 갖게 되고, 그래서 원래 모습을 던져버리고 탱자나무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준비한다. 아름답던 나무들의 마음과 몸은 온통 가시투성이가 된다.
숲에 환난이 닥친다. 태풍으로 숲은 무너지고, 가뭄으로 나무들은 목이 탄다. 설상가상으로 돌림병마저 퍼진다. 숲을 가꾸는 일꾼들은 이참에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수종을 개량하려고 한다. 그러나 숲의 주인인 원노인은 숲 스스로 그 시련을 극복하리라 기대하며 만류한다.
위기를 넘긴 나무들은 숲을 이루는 존재로서 제 몫을 인식 하고 숲의 회복을 위해 피나는 고통을 감수한다. 결국 가시가 돋았던 그 자리에 파란 싹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숲의 나무들은 노인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인은 정치하는 아들에게 숲의 정치를 배우도록 당부한다.
“싸워 이겨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서로 협력하고 화해 함으로써 개체와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새로운 창조의 질서를 만들게 된다”면서 말이다.
자신의 황폐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회복을 도모하려는 숲의 생명성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한평생 숲을 만들고 가꾸어온 원 노인이 허물어져가는 숲을 보았을 때 그절망감은 말할 수 없었겠지만, 그럴수록 그는 숲을 신뢰하였다. 노인의 그 넓고 깊은 마음은 세상을 사랑하는 절대자의 모습의 아주 작은 부분임도 짐작하게 되었다.
숲은 아마 절대적인 가치, 근원적인 존재를 향한 희구의 종착지일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초연한 나무, 그 나무들의 군락이 모여 이룬 숲은 변하지 않는 가치가 구현된 공간이었다. 식재한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점차 다양한 식생이 체계를 이루어감에 따라 숲의 완전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숲은 조화이며, 그 자체로 자족적이며, 구성하는 모든 것이 제 가치를 발현하는 완벽한 세계가 되었다.
숲은 질서와 조화의 통일체를 보여주는 창조주의 계시와 다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질서와 조화를 통한 아름다움,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각각의 나무들의 자기의 존재성을 확보하여 지켜나가는 그 치열성은 개별적인 존재들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 하는 평등에 닿아있다. 그래서 각각의 나무들의 다른 나무와 숲의 개체들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에 그것은 평화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숲은 자유와 평등과 예술과 평화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창조주의 계시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